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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의 옛모습과 현재

  • 새만금 유역의 옛모습 (조선 후기)
  • 1987년 새만금 유역 항공 사진
  • 2019년 새만금 유역 항공 사진

새만금 방조제 내수면으로 흘러드는 물줄기를 대표하는 것이 만경강과 동진강이다.
이 강들은 서부 평야지대를 관통하여 호남평야의 젖줄이 되었고,
더불어 온갖 물산이 유통되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넘나드는 소통의 공간이 되었다.

만경강은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범티마을이 발원지로 길이가 80.86km이며, 화평천, 소양천, 전주천, 탑천이 합류되어 이룬 강이다. 동진강은 정읍시 산외면 상두천에서 발원하여 길이가 44.7km이며, 정읍천, 고부천, 원평천이 합류되어 이룬 강이다. 이 두 강은 새만금에서 합수되어 새만금호를 만들었다.

새만금은 국제외교와 해양교류의 역사적 중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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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
대동여지도
첫번째 이야기
인류의 정착과 해양교류의 시작, 준왕 남천
새만금지역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새만금 앞바다에는 우리나라 600여 개소의 패총(조개무덤) 가운데 200여 개소의 패총이 밀집되어 있다. 군산 비응도, 가도, 띠섬, 노래섬, 부안 대항리 패총의 출토유물을 통해 신석기시대부터 인간의 활동과 해양교류가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기원전 194년 고조선 준왕이 남쪽으로 배를 타고 새만금 유역(금강 하구)으로 들어와 철기문화를 보급하고 한왕이라 칭하였다.
두번째 이야기
김제 벽골제와 새만금 간척
벽골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흙을 쌓아 만든 최고의 고대 저수지이다. 백제 11대 비류왕 27년(330)에 처음 만들고 이후 조선시대까지 고쳐 쌓았다. 세계 최대 길이의 새만금 방조제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벽골제에서 비롯한다. 새만금 방조제는 김제 벽골제의 10배의 규모(길이, 높이, 너비, 내부개발면적 등)로서 700년의 토목기술의 변화·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세번째 이야기
백제 국제제사의 장, 부안 죽막동 유적
부안 죽막동 유적은 백제, 마한, 대가야, 일본(왜), 중국 등이 참여한 국제적인 해양제사가 수백년동안 이루어진 삼국시대 최대의 해양 제사터다. 부안 죽막동 유적은 당시 해상 교류의 중요한 길목으로 국제항로가 있으며, 국제 무역이 성행했음을 보여준다.
네번째 이야기
백제 국제 해전
백제 의자왕 20년(660.7월)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항복하자 복신 장군 등은 일본에 있던 왕자 풍을 왕으로 추대하고 백제부흥운동(660.8~664.3)을 새만금 앞바다와 우금산성을 중심으로 전개하였다. 백강전투로 불리우는 국제 해전(백제와 왜↔신라와 당)이 663년 8월에 일어나는 등 백제 최후의 항거지로서 잘 알려져 있다.
다섯번째 이야기
후백제 국제항구 신창진
후백제(900~936) 견훤왕은 옛 백제의 국제 외교를 복원하기 위해 중국 오월국, 일본(왜), 거란 등과 교류를 활성화하였다. 대외 관문으로 추정되는 김제 신창진을 통하여 중국의 청자기술이 전래되는 등 새만금은 후백제 국제외교의 관문이었다.
여섯번째 이야기
고려 국제외교의 장, 고군산군도
고군산군도는 고려시대 송나라 서긍 사신단이 이용했던 사단항로의 중간 정착지이다. 1123년 3월 송나라 국신사 일행은 수도 개봉에서 출발, 5월 고군산군도에서 국가차원의 영접을 받았다. 당시 고려 대표로 김부식(삼국사기 저자)이 참여하였다. 6월 개성에서 일정을 마무리 한 후 귀국시 고군산군도에서 20일 가량 추가로 머물렀다. 이러한 내용들이 중국 사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기록되어 있다. 선유도에는 고려 왕이 임시로 머물렀던 숭산행궁을 비롯하여 군산정, 자복사, 왕릉 등 중요 유적이 분포하는 등 동북아 외교의 역사적 현장으로 알려져 있다.
일곱번째 이야기
고려 해양물류의 중심지
새만금유역인 십이동파도, 야미도, 비안도에서 침몰선 3척이 발굴되었다. 당시 국가에서 운영한 부안(유천리, 진서리 요지)과 강진의 청자관요에서 생산된 자기를 수도 개경으로 운반했던 조운선이 활발하게 활동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시기 국제 해양 실크로드가 완성되어 새만금은 고려시대 해양물류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여덟번째 이야기
명승과 천연기념물이 자리한 고군산군도
군산 앞바다에는 총 63개의 크고 작은 섬이 분포하며, 이를 고군산군도라 한다. 이 중 선유도는 섬의 경치가 가장 아름다워 신선이 놀았다 하며, 선유 낙조는 하늘과 바다가 모두 붉은 색조로 변하여 저명한 자연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말도에는 선캄브리아기의 지층 구조가 잘 남아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아홉번째 이야기
조선의 마지막, 백산성과 간재 선생
해발 약 48m 백산 정상부를 감싸고 축조된 부안 백산성은 선사시대부터 중심지역할을 하였으며 1894년 동학농민이 봉기하였던 역사적인 현장이다. 간재 전우(1841~1922)는 조선시대 마지막 성리학자로 이이와 송시열의 사상을 신봉하였고, 나라를 잃자 1910년부터 1922년까지 부안 계화도에서 학문정진 및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열번째 이야기
근대화의 물결과 일제의 수탈, 그리고 대규모 간척
대한제국 정부와 고종황제는 1899년 5월 1일 군산항을 자주적으로 개항하였다. 일본인들은 이 곳을 쌀 수탈의 전진기지로 삼았으며, 1933년에는 우리나라 전체 쌀 생산량의 53.4%가 일본으로 수탈되었다. 한편 이 당시 국내 최대규모의 김제 광활간척지(1,651ha)가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조성되었다. 해방 후 1960년대에 부안 계화간척지(2,741ha)가 조성되어 오늘날 호남평야가 완성되었으며, 식량안보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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